(18:24 19:7)

성령으로 받는 세례라는 의미의 성령 세례는 세례 요한이 가장 먼저 언급한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뒤에 오시는 이, 곧 예수님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시대에 성령 세례는 물세례와 명확하게 구분되었고, 이 구분을 18장 후반에서 19장 초반까지 성령 세례에 관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사도행전이라는 성경 자체가 성령의 역사를 증언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어떤 분이며, 성령을 받은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진정한 구원이란 성령을 받는 것이며, 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걸 설명하는 게 사도행전의 의도며, 이 의도에 비추어 보면 결국 성령을 받는다는 게 성령 세례며 이것이 구원과 교회를 이루는 성도의 기본 정체성이자 출발이다. 성령 세례는 신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라 구원의 기본이며 구분이다.

 

성령 세례는 신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라 구원의 자격

 

그렇다면 성령 세례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앞서 글에서 먼저 설명하였는데,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걸 본능으로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앙의 단계를 굳이 나눈다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삶 -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삶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사는 삶을 말한다. 바로 거듭남이다.

 

신앙의 단계를 굳이 나눈다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 –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삶 -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삶

 

여기서 특히 구분해야 하는 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이게 뭐 특별히 구분할 것인가 싶기도 할 것이고, 우리가 믿는 예수는 당연히 십자가에 달린 예수인데 별스럽게 군다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베드로 사도도 이 둘 사이에서 죽을 정도로 고민하고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신앙을 비교도 할 수 없는 우리가 태연하게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변화산에 오르시긴 전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이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고,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고백해서 칭찬받았다. 그러나 이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했을 때 베드로는 만류했고,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베드로를 '사탄'이라고까지 하면서 책망했다.

 

베드로의 칭찬과 사탄이라고 하신 책망 사이에 있는 유일한 것 바로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

 

이 장면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큰 차이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는 별다른 감응이 없다. 성령 세례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자 성령 세례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건 사도행전이 의도하는 바에 비추어 보면 명백히 구원이 없다는 증거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이때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까지 깊은 갈등의 세월을 보낸다. 성경을 보며 베드로의 이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가 빌라도의 뜰에 가서 확인하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왜 사람들에게 심판을 받아 낮은 자리로 끌려가는지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엠마오로 도망갈 정도로 이걸 알 수 없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그리스도로 전하는 베드로의 변화는 아주 중요한 전환

 

그랬던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니 사람들 앞에 일어서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담대하게 전했다. 이 한 사도의 변화가 성령이 누구신지, 성령강림과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된다고 한 게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뿐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 그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걸 전하므로(13) 사도들이 그를 사도로 인준했다.

 

지금은 어쩌다 그저 상용구가 되어버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라는 이 한 표현은 극한 순교를 당하면서도 전한 사도들의 복음 중의 복음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인지 아닌지가 나의 구원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고백을 하게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고, 성령으로 잉태된다. 예수님께서도 이 일이 우리에게 있기에 가시는 게 우리에게 유익이라 하셨고, 성령이 오셔서 이 비밀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성령 세례와 구원을 받은 것

 

그러므로 이걸 모른다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면 당연히 성령 세계를 체험했으니 자기 안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너무나 상식적으로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성령 강림이 무엇인지와 성령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성령이 알게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알 수밖에 없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면, '십자가에 달린'이라는 표현이 이토록 중요한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건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 신앙이다. (다음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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