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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란 말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수학의 무정의 용어처럼 일상이 된 말이다. 그냥 상용구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의미를 매우 깊이 새겨야 한다. 대충 넘어가면 안 된다. 예수님은 분명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지만 신앙하는 사람이 그 예수를 믿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세상의 가난을 해결하는 메시아가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믿는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아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부유하고 평안하게 되며,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기를 기도하는 신앙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실패했다는 의미다. 그런 예수님께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기를 구한다는 건 예수님을 희롱하는 것이지 신앙하는 게 아니다.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고 증거다. 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세상에서 성공하는 걸 구하는 건 예수님을 희롱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누가 졌던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는 귀신이나 사탄을 쫓아내는 퇴마의 상징도, 세상의 성공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해결하는 능력의 부적도 아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 패배자의 상징이다.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도무지 쓸모가 없어서 죽여 버려야 하는 존재를 달아 처형하는 형틀이 십자가다.

 

자신은 늘 교회에서나 집에서 또 생각나는 순간마다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어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기를 바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말하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모순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라는 말이 그런 모순으로 회칠 된 채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상용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다고 하는지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다. 자신이 이 신앙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구원은 없다. 심지어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착각마저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의미도 모른 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학력이 낮은 사람이 내는 전문적인 의견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세계의 낮은 위치에 있다는 게 확인되면 크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생과 세상에서 실패해서 남이 내 목숨을 빼앗는 처지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그렇게 쉽게 인생을 넘어 영혼의 구주로 믿는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를 정말로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런 사람이 교회 문턱을 넘어섰다는 그 하나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걸 신앙이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렇게 넘어선 교회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이기고 성공하고 평안하기를 구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모순인데 그걸 신앙이라 말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다. 이 심각한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벗어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이건 성경이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 논리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인 신앙은 여러 문제를 자아낸다. 앞서 말한 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세상의 성공을 구하는 근원적인 모순 외에도 구원받았다면서 항상 회개하고, 예수님을 형제라 또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하면서 자신은 예수님과 다르다고 실토한다. 그저 노력할 뿐이라고 죄책감에 절은 실토를 신앙의 겸손으로 포장까지 하고 있다. 만 가지를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든 걸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만 적용해도 오늘 또 회개하는 자신은 온전한 구원의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지만 그걸 알 정도면 오히려 자기 죄를 시인한 지경에 이른 사람이다.

 

성령 세례의 결정적인 증거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의 핵심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정체성은 이렇게 중요하지만, 그냥 뇌까리고만 있다. 오늘도 더 이상 낮고 천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성공을 바라는 모든 경건을 가장한 신앙들이 예수님을 모독하고 있다. 자신이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모독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그것에서 구원이 시작된다. 그 구원이 시작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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