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0:1-12)
성경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을 제외하면 모두 엘리야나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와 바울처럼 다시 살아나는 데 작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의 부활과 다른 건 그렇게 살아난 사람들은 모두 다시 죽었고 히스기야 왕처럼 새로 받은 삶이 큰 하나님의 역사를 남기는 삶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인 셈이다.
유두고는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의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었다가 바울 사도가 살려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있는 위치와 자세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 즉 전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걸 듣고 있었는데, 유두고는 자리가 부족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창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 완전히 속한 게 아니라 바깥과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위치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
또 하나 그는 졸고 있었다. 바울 사도의 강론이 밤늦게까지 길어진 것도 이유겠지만 적어도 말씀을 아주 경청하고 있었던 게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게 어중간하고 위험한 위치에서 졸면서 말씀을 듣다가 떨어져 죽은 것이다.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졸면 해를 당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창문이나 문밖에서 구경하는 듯한 자세가 아니라 유두고는 적어도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중간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건 유익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에 모호하지 않다. 어떤 의미인가 하면, 생명은 생명이거나 아니거나 하지 어중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질이야 반물질이 있다고 해도 생명에 반생명의 개념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다. 말씀은 설명한 대로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씀으로 거듭난 생명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식의 어중간한 상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나 존재가 아니다.
유두고는 이런 어중간한 신앙 포지셔닝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다. 다만 바울 사도가 그를 살려냈다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도 살리시고 사랑하신다는 걸 함께 말씀하시고 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유두고를 살려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위로를 얻었다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행 20:12)
우리는 이 일에서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성령의 능력과 기적을 이야기할 때 설명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자 원하시는 존재인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일을 위해서 필요하시다면 죽은 사람도 살리신다는 것이다. 이는 거의 성경의 대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유두고의 위치와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밭에 가라지가 심긴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세상의 것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말씀을 들을 때는 그것에 올인하는 자세로 들어야 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존재로서 내 존재의 정체성과 목적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또는 대충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차지도 덥지도 않은 자세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죽은 유두고를 살리셨고, 사람들은 위로를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 그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유두고와 같이 어중간한 상태에 있다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일로 큰 위로를 받는다. 유두고의 일은 하나님의 본심과 그 본심으로 구원받는 사람, 그리고 그 구원으로 인하여 위로받는 사람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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